<염화 미소: 불법이 잠시 머무르다.> - 2022년 1월
*문혜자 작가의 쉼없이 이어진 예술적 작업과 열정, 그리고 명상은 어느덧 불교의 철학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올해 들어 보여준 작품의 제목은 <붓다의 미소>로 염화미소라는 유명한 부처의 가르침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말이 없이 전한 설법처럼 붓다의 손에 있던 한 송이의 연꽃이 부처의 법이고 그법을 깨달은 제자의 미소는 부처가
전한 다르마와 같은 것이다. 그 동안 끊임없이 작품에서 내려놓으려고 했던 작가의 노력은 결국 말이 없이 전해진
붓다의 설법과 그 맥이 상통한다.
*우선, 2021년 5월의 작품들 잠시 언급하면, 격자 문양은 규칙적인 호흡과 일상의 평안이 유지되는 안정적 구성을
보여준다. 연꽃이 격자무늬 창살 위로 피어 올라있다. 화려한 연꽃이 수줍은 듯 배경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두텁게
칠 되어진 어두운 사각형이 배경의 규칙적 패턴에 딱 들어맞아 연꽃의 주변 격자무늬 사이에 자리 잡은 것이 보인다.
여기서 작가의 작품에 등장 하는 세 가지 요소가 있는 데, 캔버스천 위에 연필선으로 그린 창살 문양, 색깔을 채워
넣은 창살 문양들, 적갈색의 사각형, 그리고 연꽃이다. 이 요소들은 2022년 1월 작품에도 등장한다.
*2022년 1월의 작품을 보면, 2021년 작품과는 달리 연꽃이 창살 문양과 적갈색 사각형 위를 덮고 있지 않다.
연꽃은 배경이 되는 창살 문양에 스며 있는 듯하다. 그런데 오히려 그 맑고 처연 함이 오히려 배경의 무게를 이기고
떠오른다. 화면의 중앙에서 가장 화려한 모습의 연꽃 이었을 거라 충분히 추측할 수 있는 연꽃의 흔적이 보인다.
그 대상은 존재하고 있는 듯하고, 사라질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이것이 작가가 말하는 중도인가?
캔버스위로 떠오르는 연꽃은 무념 무상 무욕의 존재로 작가의 표상이 되었다. 놀랍다. 이것이 오로지 즉흥적인
붓질로 가능한 결과물 이라니! 작품이 참으로 아름답다.
* 또한 작가는 캔버스라는 2차원의 평면을 “그린 듯-안 그린 듯”이 극복한다. 회화가 공간을 얻는 순간이다. 그녀의 회화가 겪어온 많은 변곡 점들이 있었지만 이 번엔 비우고 또 비움의 결과로 시각적 공간이 생긴 것이다. 마치 캔버스와 보는 이 사이에 연꽃이 떠있는 것 같다. 오랜 기간 작가의 공부와 사색은 그 때마다 늘 작품으로 구현 되었고 이 번에도 변함이 없다.
캔버스 에는 물감을 칠하지 않은 부분에서 여러 겹이 칠 되어진 부분까지 다양하다.
격자 무늬의 화려한 색의 규칙적 배열은 안정감 있게 배열되어 있으나 그렇다고 화면 전체를 가득 메우는 답답함은
결코 문혜자 작가의 것이 아니다. 정사각형의 캔버스의 세 귀퉁이는 전혀 물감을 칠하지 않고 캔버스가 숨쉴 공간을
남겨두었다. 그리고 한국의 전통 창살이 방과 방을 나누기도하고 연결하기도 하는 두 가지의 역할을 하듯, 배경이
되는 문양이 창문과 벽의 상징을 동시에 갖고 있다. 캔버스 위에 작가는 계속 중의적 상징들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손대지 않은 캔버스의 세 귀퉁이는 전시된 공간의 벽과 일체가 되어 격자 무늬를 창살처럼 보이게 하고, 짙은 적갈색 직사각형을 패턴사이에 불쑥 끼워 넣는다. 규칙적 패턴에 불쑥 끼어든 직사각형은 심신의 안정을 방해하고 평온한 수행자가 피하기 힘든, 반드시 마주해야 하는 벽처럼 단단하고 뚫기 힘든 장애로 보인다. 작가는 그의 노트에서 “이치의 망상으로 채워진 구성 위 허공에 연꽃이 여여 하여 중도를 이룬다”고 했다. 작가에게 일상적 삶은 “이치의 망상”이다. 화려한 색이 규칙적으로 펼쳐지지만 갑자기 꽉 막힌 벽이 일상에 불쑥 끼어들기도 한다. 작가의 이 두 회화적 요소 위에 한 송이 아름다운 연꽃이 즉, 작가의 참마음이 연꽃이 되어 수면위로 떠오른다. 나는 문혜자 작가의 작품에서 그 꽃이 빛이 되는 걸 본다.
*당나라시대의 지성 배휴거사와 스승 황벽선사가 마음에 대해 묻고 답한 <전심법요>를 해석한 책<허공을 나는 새 흔적이 없듯이>라는 책을 정독하고 있다는 문혜자 작가는 그 불법의 대화를 읽으며, 부처의 미소가 머물 자리를 마음 한 켠에 내어주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 흔적도 없는 마음의 경계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웃는 고양이”체셔”처럼 아니면,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머물기도 하고 동시에 사라지기도 하는 데 그것은 마치 수행자가 매우 원하고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무 때나 나타나고 사라진다.
참마음은 원래 그 자리에 그렇게 있는 데 수행자들의 집착이, 혹은 망상이 겹겹이 눈을 가려 볼 수 없다가 문득 보였다가 하는 그런 것이다. 작가의 연꽃은 이제 그 스스로를 드러내는 데 집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붓이 가는 대로 마음을 비우자 작가의 참 마음이 한 연꽃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작가가 그의 참마음을 세세히 그리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거늘... 규칙적인 일상과 수행의 장애위에 무심하게 올려놓은 부처의 미소에 다름아니다. 한참을 지켜보고 있자니 작가가 그 연꽃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아름다움이 흩어지는 것을 그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문혜자 작가는 상관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2022.01 평론 조소영
1 염화미소: 석가모니 부처께서 마하카샤파에게 말없이 마음으로 불법을 전한 것을 의미하는 선적인 표현. 문자 그대로 꽃을 손으로 잡는다는 뜻 - 꽃을 손에 드신 부처의 말없는 진리 그리고 부처의 다르마를 이해한 제자 마하카샤파가 띄운 미소
2 진흙 속에서 자라지만, 오염되지 않는 불교의 상징인 연꽃은 세속에 더럽혀지지 않는 중생과 같이 비유 되곤 한다
3 중도: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는, 유무의 양 극단을 떠난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불교의 핵심 교리인 연기법과 공사상, 그리고 무자성과 불이법에 대한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좀 더 쉽게 이야기하면, 있음과 없음을 떠난 것을 중도라 말하나, 이것도 사실 억지로 붙인 이름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따라서 서구에서 말하는 중용과 유교에서 말하는 부족함과 넘침이 없는 과 불급과 같은 이분법을 바탕으로 한 상대적 개념은 불교에서 말하는 언설을 초월한 진리인 중도와 구별되어야 한다. (실용 불교 용어사전 참조)
4 작가는 이번 작품에 그동안 꾸준히 수련한 마음자리 내려놓기를 중요한 주제인 연꽃을 통해 구현하였다. 이에 저자는 문혜자 작가의 연꽃그림화법을 “그린듯-안그린듯”이라고 글로 옮기었다.
5 통풍과 채광이 목적인”창”, 방과 방을 연결하는 “호”를 일컫는다. 호는 공간과 공간을 잇는 통로로서 사람이 출입할 때는 문, 출입하지 않을 때는 창이 된다. 그리고 때에 따라 가 벽의 역할도 한다.
6 불교에서 장애는 수행과 깨침에 방해가 되는 번뇌를 말한다.
7 여여하다: 여, 진여라고도 함. 모든 사물의 진실하고 변하지 않는 본성. 다시 말해, 시공을 초월하여 변하지 않는 것. 현상 그대로의 모양인 동시에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는 뜻. 법성과 같은 뜻으로 현상적 세계의 겉모양에 반대되는 제법의 궁극적 실체인 진여로서 지극히 온전하다는 뜻: ‘여여한 법과 성품에는 본래 생도 없고 멸도 없으며 오고 감 또한 없느니라’
8 망상: 중생의 마음을 말하며, 이치에 맞지 않는 망령된 생각. 곧 현상에 머물러 마음을 내는 것.
9불교에서 불법은 교법, 최고의 진리, 법칙, 도리 존재, 실체, 모든 존재, 교의(가르침), 수행(도리, 방편), 진리를 모두 뜻한다.
10 웃는 고양이 “체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등장한 웃는 고양이는 체셔캣으로 불리는데, 이야기 중에 불쑥 이유 없이 나타났다가 웃음소리와 입모양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다.
11 슈뢰딩거의 고양이: 관찰자의 시점에 따라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다는 양자물리학에 등장하는 이론
12 참마음: 이름이나 형태도 없는 본래의 마음가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