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4일부터 9월 4일까지 진화랑에서 문혜자 작가의 작품들이 3부연작으로 나누어 전시되었다. 이 전시는 작가의 작품들 가운데 2008년에서 2010년에 제작된 회화 작품들로 World’s End Girlfriend라는 post-rock그룹의 앨범들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기에 작가는 전시의 제목도 그대로 차용했다. World’s End Girlfriend는 즉흥적인 작곡과 편곡, 그리고 전자음악과 같은 현대적 악기와 클래식한 현악의 조화롭고 자유로우면서 동시에 진지한 음악성으로 유명하다. 이 그룹의 음악은 문혜자 작가의 그림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화두인 즉흥성, 그리고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무경계를 향한 진지한 고찰과 그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다른 일정 덕택에 마지막 날에야 그 그림들을 볼 수 있었다. 필자는 작가의 그림을 좀 더 잘 이해하려고 작가가 화폭에 옮겨놓은 음악들을 자주 들어 보았다. 하지만 굳이 그 음악들을 듣지 않아도 그녀의 그림들은 이미 음악이었다. 문혜자 작가의 그림들은 캔버스 위에서 숨을 쉬면서 움직이고 노래하고 있었다.
●연작 Music for Dream’s End Come True는 World’s End Girlfriend의 Singing under the
rainbow를 떠오르게 하는 작품들로 전시를 이루고 있다. 밝고 기운차며 희망찬 미래를 암시하는 이미지들(새, 종, 기운차게 달려나가는 인물, 만개한 꽃,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과 더불어 놀랄만한
것이 담겨있을 법한 상자들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보태준다. 음표들이 둘레에 오선지와 같은 물결 위에 넘실거리고 화면을 가로지르는 강물 위로 지나가는 배들은 작가의 미지의 세계를 향한 부푼 동경을 리듬감 있게 표현하였다. 보는 내내 기분 좋은 흥분을 가져다 주는 연작들이다.
●연작 Music for Enchanted Landscape Escape는 1부에서 등장하는 만개한 꽃과 밝은 아침의 노래와 대비되는 낙화와 몽환이 중심테마이다. 떨어지면서 흩날리는 꽃잎들이 화폭 위에 넘실거리고 평온한 별빛 아래 잠에 빠진 인물이 꿈을 꾸는 데 그 옆에 작가의 이름이 영문으로 Moon 이라고 그려져 있어 달밤인가 별밤인가 재미있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2부의 연작들은 꿈속에서 비현실적인 단편들이 비논리적으로 연이어 일어나듯이 고요하면서도 고요를 깨는 작고 분주한 움직임들이 꿈의 논리로 배열되어있다.
●연작 Music for Mass Murder Refrain의 배경이 되는 음악은 Palmless Prayer/Mass Murder Refrain 이라는 WEG 와 Mono의 협력앨범이다. 이들은 2003년 나치의 홀로코스트(The Holocaust)를 보고, WEG가 오케스트라 편곡과 현악 구성을 담당하고, Mono는 암울하고 파괴적인 Noise를 채워 만들었다고 한다. 어둠에서 슬픔, 그리고 희망으로 흐르는 서사시적 앨범인 이 작품을 문혜자 작가는 오랫동안 몰입하여 들으며 작업을 했다고 한다.
2008년에서 2010년에 제작된 문혜자의 회화작품들을 한 자리에 모은 이번 진화랑 전시를 통해 작가는 음악의 회화적 변주를 어떻게 연주하는 지 보여주었다.
– 글 조소영(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