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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7일

화가 문혜자의 Composition of two light sources series (2019) – 조소영 2019.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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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7월 17일

 

“마티스의 색감과 몬드리안의 차가운 추상”이 화두였다는 이번 연작은 문혜자의 화가로 출발한 시점부터 작가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던 긴 사색을 여미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문혜자 작가에게 마티스와 몬드리안은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우선, 마티스는 음악이 소리의 고유한 특징을 살리는 데 힘쓰는 것처럼, 미술은 색채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구성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그 자신이 색을 섞지 않고 순수한 색감을 살리려고 노력했으며, 디테일을 과감히 생략하는 구성으로 주제에 몰두하려 노력했다.

 

위의 마티스에 대한 설명은 문혜자 작가의 색채의 사용과 주제를 위해 디테일을 생략하는 과감한 구성까지 닮은 점이 많다. 특히, 이 번 <Composition of two light sources> 2019의 경우에는 점, 선, 면, 색채라는 최소한의 회화적 요소만으로 작가의 에너지와 역동성을 표현하고 있다. 광원은 면의 구성과 색의 대비를 통해 그 존재를 인지할 뿐이다. 화면 위에 자유롭게 뻗어 있는 광선들의 방향이 두 개의 다른 출발 점이 있음을 추측케 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두 개의 광원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광선들은 힘차게 뻗어간다. 어디로든…

 

그렇다면 두 번 째, “몬드리안의 차가운 추상”은 문혜자작가의 작품에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몬드리안은 데 스틸운동의 창시를 통해 “우리가 무언가를 충분히 분석하고 단순화시키면 그 본질에 도달한다.”고 피력하였다.

 

사실, 문혜자 작가는 2015년 작가노트에서 몬드리안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했는 데, 그녀가 몬드리안의 작품을 보고 놀란 것은 화면을 가르는 직선들과 점, 색채가 화려하게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듯 보였기 때문이다. 작가는 계속해서 관람객들이 그녀의 작품을 통해서도 그러한 자유로운 충만을 느끼기를 바란다고 (2015년 작가노트) 했다.

 

마티스와 몬드리안은 그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두 개의 광원이고, 그녀가 추구하는 예술의 모티브이다. 오랫동안 분석하고 관찰하고 구현해낸 장식적이며 동적인 충만한 에너지를 오로지 점과 선과 면, 그리고 색채로 표현하여 “모든 것으로부터 얽매이지 않고 … 어떻게 그려야 가장 자유로워지는지” (2000. 4월 작가노트) 항상 고민해온 결과물이 이 번 <Composition of two light sources> 2019 작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조소영 2019.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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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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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문혜자의 비움의 철학에 의미를 두면서 계속 되었던 2018년의 compositon 작품들은 여전히 진화 중이다. 화면의 분할을 실험하고 광원을 화면밖으로 옮기며, 빛에 관한 천착을 계속했던 작가가 최근 2018년 12월에는, 캔버스의 테두리로 뻗어 나가는 빛살들의 중심, 즉 광원이 그려져 있던 곳에 광원을 그리지 않고 대신 주변부에 점선형태로 원들을 그려 넣었다. 이 주변부의 중첩된 원들은 빛의 파동을 연상시킨다. 중심은 바탕색 그대로 내버려 두고 파동의 원들을 여러 겹 그리거나, 중심이 오히려 약간 더 어두워지고 주변부의 점선형태의 원이 진하고 선명하게 퍼져 나가는 밝은 파동들이나 혹은 나이테로 보이는 점선들을 그린, 이렇게 두 가지 타입의 작품이 최근 작가의 작업이다. 기존의 작품에서 보였던 강렬한 광원은 역동적 힘의 원천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 새로운 시도는 정 반대의 개념으로 보이는데, 중심부의 색감이 차분하고 어두워 짐에 따라 기존의 작품에서 보였던 시선의 확장과 퍼짐이 후자에서는 중심으로 모이는 시각적 효과를 준다. 역동적 힘의 방향이 밖이 아니라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 이전의 작품들이 빛의 발광에 중점을 두었다면 후자는 빛의 수용체, 다시 말해, 빛을 감지하는 기관인 눈의 홍채처럼 시선도 빛도 중심으로 수렴하게 된다. 매우 흥미로운 작품의 변화이다. 이전에는 작가가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역동적이고 즉흥적으로 자신의 창의적 에너지를 발산하려 했다면, 이제는 작가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어서도 다분히 관조적이고 사색적으로 바뀌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는 작품의 변화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작가의 작업과 늘 함께하는 음악이 최근에는 문혜자 작가의 딸인 음악가 이영임이 제작한 <법흥: 한 바퀴 인생>이라는 앨범*(법흥스님 작사/ 이영임 작곡)이다. 여기엔 법흥 스님의 시에 이영임 선생이 곡을 붙인 작품들과 아름다운 명상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불교음악과 함께하는 문혜자 작가의 작업이 이제는 어디로 나아가게 될지 작가의 쉼 없는 행보에 감탄을 멈추기 힘들다. 2018-12-29 조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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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5월 14일

    <Composition –비움의 철학>(2018)에 관한 짧은 생각들 <Music for charms of the night sky 005> (2016), <The Sun series> (2017), <Composition series> 소품 (2017)에 이어서 대작 <Composition- 부제: 비움의 철학>(2018)을 통해 문혜자 작가가 보여주는 빛에 관한 철학 – 평론가 조소영, 2018 지난 3년간 작가 문혜자의 작품은 하나의 주제인 빛으로 같은 듯 다른 듯, 캔버스 위에 다양한 시점과 색채를 펼쳐 왔다. 해마다 빛에 관한 작가의 천착을 따라잡는 것 또한 나에겐 늘 새로운 도전이었다. 작가의 가장 최근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Composition –부제: 비움의 철학>(2018)은 작가가 지난 몇 년간 화두로 삼았던 빛, 몇 년 전 작업실에서 집으로 향하던 작가의 눈과 조우했던 가로등 불빛, 그 빛이 작가에게 불러일으켜 주었던 설렘과 기쁨의 순간을 캔버스 화면에 담으려고 했던 (위에 열거한) 전작(前作)들의 묶음이자 정수이다. 문혜자 작가의 회화적 구성력은 매우 논리적이어서 작품을 구성하는 회화적 요소들을 자유자재로 더하거나 빼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낸다. 작가의 최근 작인 Composition (대작)의 부제는 “비움의 철학”이다. 전작들에서 작가가 한 일은 작품 안에 그간의 작가가 천착해 왔던 빛의 구상들을 담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번 작품에서 작가는 빛에 관한 요소들을 아름답게 채우고 정작 광원에 관한 한, 어떤 묘사도 담지 않았다. 즉, 그리지 않아도 당당히 존재하는 광원의 실존을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2016년의 작품 <Music for Charms of the Night Sky 005>에서 시작된 순수한 빛의 경험에서 시작된 빛을 향한 이끌림과 집중, 2017년 연작<The Sun>과 <The Light>에서 보여준 빛의 성질 가운데 1)광선은 직진한다. 2) 빛은 입자이다. 이 두 가지 빛의 성질이 만들어 내는 공간적 효과, 그리고 2017년 후반부에는 composition series 소품을 통해 직진하는 광선이 색의 입자로 이루어져있으며, 그런 개별 선들이 곡면을 이루며, 화면의 분할을 통해 빛이 얼마나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는 지 보여준다. 지난 몇 년간, 세 가지 작품들의 구성적 요소들이 <Composition- 부제: 비움의 철학>(2018)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가의 마음을 순간에 사로잡았던 광원이 이 번 작품의 중심에서 관람자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으며, 뻗어 나오거나 수렴하는 듯한 광선의 공간적 효과는 2017년 <The Light>의 것과 닮았으며, 소품 <Composition>(2017) 의 직선 면 분할이 이 번 대작에서는 곡선 분할로 변용되었다. 이렇듯 지난 3년 간의 작가의 빛에 관한 천착이 이 번 작품에 집대성 되었으면서도, 그 간 작가의 작품에 오랜 시간 등장해 왔던 이야기나 설명을 모두 내려놓았다. 화려한 색들의 조형적 이야기들은 몸을 감춘다. 작가는 ‘빛은 거기에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비워두었다’. 작가의 연륜과 성찰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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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1월 1일

    문혜자작가의 그림이 품고 있는 에너지와 구조 예술평론 존 오스틴 문혜자의 기하학적인 유화 작품들은 그 자체로 활력이 넘치는 자신감과 권위를 드러낸다. 문혜자의 작품의 중심에는 물질적 현실에 기반하지만 아주 예민하게 비물질 사이의 교감에 대한 요구도 인지하는 그런 경험과 각 작품들에 공존하는 선험적 현실에 대한 일례들을 관람자들에게 제공하려는 그녀의 명백한 충동이 있다. 다시 말해, 그녀의 작품은 성격상 혼성이고, 이것은 그녀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환상적 구성을 통해 볼 때, 현대시각문화가 강조하고 칭송하는 불순함이나 예측불능과 일맥상통한다. 조셉 알버스가 세우고 이후, 하드 엣지 추상화가들과 옵아티스트들이 발전시킨 색 반응을 구성하는 전통을 그녀가 배운 바 대로 이어가면서도 이들 가운데 제이콥의 작품에 나타나는 주된 특질인 동시적 분산이 요컨대 그녀의 작품마다 스며 나오는 마법 같은 전능함의 성직자와 같은 경건한 작품이 되는 원천이라 하겠다. 그녀의 작품이 집에까지 몰고 오는 미학적 순수함의 경험은 초월의 요구와는 별개로 아주 다양하고 복잡한 정신적 만족에서 나온다. 이러한 만족감은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관계나 근원에 대한 요구, 정체성, 방향성, 헌신의 대상, 그리고 유용성에 대한 욕구” 등을 포함한다. 이들은 각각 문혜자작가의 작업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어서, 모서리의 질적 상태와 양감과 색감 사이를 연관 짓는 경험을 관람자에게 선사한다. 게다가 작가는 특히 인공물과 자연물, 그리고 그 둘의 조합을 가지고 만들어내는 그녀의 작품 속에 이러한 시각적 코드를 조화롭게 그리고 섬세하게 심어놓는다. 고대 철학자 아폴로니우스가 우리의 “모방 능력”이라고 한 것 즉, 우리의 머리 속에 저장되어있는 사물이나 이미지들을 추상적 모양들과 패턴들로 인식하기 위해서 우리가 그 투사능력을 사용하는 방법 등이 바로 이런 작업에서 재미있는 점이다. 문혜자작가는 그녀의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이런 류의 분류를 하려는 지각 행동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대가임에 분명하다. 작가가 창안한 형태들, 질감들과 색들은 관람자들이 연상력을 이용하는 동안이면 충분히 여러 가지 생각들을 신속히 이끌어내도록 하는 회화적 방법이다. 그러므로, 만들기와 연결하기, 의견과 예상 사이의 복잡한 상호 반응의 과정은 작가 작품의 구성과 제목을 마주하는 관람자의 눈과 정신에 매번 발생한다. 대담함, 운기 가득함, 그리고 구조화된 천상의 아름다움은 문혜자 작가의 작업이 가지고 있는 보증된 각인이다. 여기에, 불확실성에 젖어 든 감각이 띄워놓은 듯 한 각각의 그림에는 체계적인 층들이 켜켜이 검사하고 총괄되고 묶여진 채 의도적으로 색과 그림이 분배되어있다는 점을 우리는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 그림들은 다음의 두 가지 조건 사이에서 계류 중인 듯한 상태로 우리의 흥미를 자극한다: 관람자가 경계 없는 무한으로의 색의 확장을 사용함으로써 초월적인 면을 떠올리도록 용인했음에도 정작 작품은 선험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있다. 그러므로, 기하학적 추상에서 이런 켜켜이 얹어진 색의 현시는 그 자체로 인내하는 현재와 변화와 변화하지 않음, 시간과 무시간 사이의 대비를 떠올리게 한다. 문혜자작가의 작품이 주는 분명한 즐거움의 한 단면은 실제냐 아니냐를 놓고 우리의 감각을 혼란스럽게 한다든지 공간적 유희를 빼어나게 완성한다든지 이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유희이다. 그녀의 탁월한 디자인 감각 그리고 질감과 비율을 다루는 재능과 마찬가지로, 작가의 신중한 패턴과 색들의 연구는 이런 놀라운 작업에서 예민하게 감지된다. 작가는 그만의 형태로 계산된 예측불가를 통해 세상을 표현한다. 그러면 이어서 상상력을 촉발시키고 정신을 매료시키며 관람자의 정신을 같은 정도로 녹여 넣을 그런 이상적인 도식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존 오스틴은 맨하탄에서 거주하며 일하고 있는 예술평론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