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문혜자의 비움의 철학에 의미를 두면서 계속 되었던 2018년의 compositon 작품들은 여전히 진화 중이다. 화면의 분할을 실험하고 광원을 화면밖으로 옮기며, 빛에 관한 천착을 계속했던 작가가 최근 2018년 12월에는, 캔버스의 테두리로 뻗어 나가는 빛살들의 중심, 즉 광원이 그려져 있던 곳에 광원을 그리지 않고 대신 주변부에 점선형태로 원들을 그려 넣었다. 이 주변부의 중첩된 원들은 빛의 파동을 연상시킨다. 중심은 바탕색 그대로 내버려 두고 파동의 원들을 여러 겹 그리거나, 중심이 오히려 약간 더 어두워지고 주변부의 점선형태의 원이 진하고 선명하게 퍼져 나가는 밝은 파동들이나 혹은 나이테로 보이는 점선들을 그린, 이렇게 두 가지 타입의 작품이 최근 작가의 작업이다.
기존의 작품에서 보였던 강렬한 광원은 역동적 힘의 원천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 새로운 시도는 정 반대의 개념으로 보이는데, 중심부의 색감이 차분하고 어두워 짐에 따라 기존의 작품에서 보였던 시선의 확장과 퍼짐이 후자에서는 중심으로 모이는 시각적 효과를 준다. 역동적 힘의 방향이 밖이 아니라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 이전의 작품들이 빛의 발광에 중점을 두었다면 후자는 빛의 수용체, 다시 말해, 빛을 감지하는 기관인 눈의 홍채처럼 시선도 빛도 중심으로 수렴하게 된다. 매우 흥미로운 작품의 변화이다.
이전에는 작가가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역동적이고 즉흥적으로 자신의 창의적 에너지를 발산하려 했다면, 이제는 작가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어서도 다분히 관조적이고 사색적으로 바뀌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는 작품의 변화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작가의 작업과 늘 함께하는 음악이 최근에는 문혜자 작가의 딸인 음악가 이영임이 제작한 <법흥: 한 바퀴 인생>이라는 앨범*(법흥스님 작사/ 이영임 작곡)이다. 여기엔 법흥 스님의 시에 이영임 선생이 곡을 붙인 작품들과 아름다운 명상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불교음악과 함께하는 문혜자 작가의 작업이 이제는 어디로 나아가게 될지 작가의 쉼 없는 행보에 감탄을 멈추기 힘들다.
2018-12-29 조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