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06 작가 문혜자)
내 그림을 말한다.
“숨을 쉬는 캔버스”
캔버스 위를 스쳐 지나가는 붓 놀림은 나의 정신을 집중시키는 일종의 퍼포먼스다. 어떤 형태를 묘사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붓의 놀림 그 자체에 더 중점을 둔다. 태양의 빛에 가까운 보라색 기운의 노랑색을 바탕에 칠하고 그 보색 톤인 자주색으로 드로잉을 한다. 그리고 끝까지 그 드로잉선을 존중한다. 빛이 스며들듯이 남겨지는 드로잉선 옆에는 아주 좁은 공간이 바탕색인 노랑색으로 비치고 그 곳은 내 그림이 숨을 쉬는 곳이다. 나는 주로 세필(0번)로 공간을 빠른 손놀림으로 채색하면서 나의 집중력을 발휘한다. 그때 나는 무척 즐겁다. 그래서 대작의 그림도 세필로 그리는 데 그것은 나만의 비밀이다. 그림을 멀리서 보기도 하지만 가까이서 볼 때 붓의 흔적을 느끼는 것도 즐겁지 않은가?
아주 두텁게 칠한 색 위를 예리한 조각도로 스크래치 하는 것도 나의 즐거움이다. 이 때 나는 더욱 더 대담해지고 기운이 난다. 오랜 세월 조각을 해온 나에게 조각도는 무척 친숙하게 움직여 준다. 색채를 사용할 때는 항상 인근보색의 색채이론을 근거로 하며, 밝고 명랑하고 때로는 암울하게도 표현하지만 대체적으로 5월의 자연을 연상케 하는 색상으로 그 음악의 분위기에 따라 채색 한다. 보색의 원리를 염두에 두고 서로의 색상이 선명하게 보이도록 의도한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회에서 각 악기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음색처럼 색을 통해 표현한다.
나의 그림은 무겁지 않다. 그러나 즐겁고 강렬한 에너지가 있다. 나는 그림을 통해 삶에 대한 나의 아주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음악의 소리는 자연의 소리처럼 친숙하지는 않지만 훌륭한 음악은 자연의 소리와 달리 감정을 자극한다. 특히, 내가 근간에 듣고 작업하는 포스트 락 음악은 나의 정신을 보다 더 앞서가게 한다. 전자악기와 오케스트라의 현악기가 합쳐져 연주되는 그 음악을 듣고 나는 그것을 재 해석 하여 추상과 구상을 넘나들며 나만의 세계를 구축 하는 데, 이렇게 함으로써 현대 회화에서 개인적 테크닉이 곧 현대회화의 한 장르가 됨을 나의 경우와 일치시키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현대음악이 네게 부여하는 가장 앞서가는 느낌을 차용하여 나의 그림에 표현 하고 있다.
나는 자연스럽게 흐트러져 보이는 그림, 그러나 단아한 긴장감과 삶의 열정이 있는 그림을 그린다. 나의 정신의 근저 에는 한국 전통의 무속 음악이 베어있다. 어릴 적 무속 인의 굿 판에서 화려하게 의상을 입고 무아의 경지에서 춤을 추던 무속 인의 모습이 아직도 나의 뇌리 속에 자리하고 있다. 현대음악과 한국의 전통 무속음악은 일치 하는 데가 많다. 그러한 예로, 확실한 화성학에 근거하지 않은 자유로운 리듬과 불협화음이 주는 묘한 느낌은 서로 비슷하다. 나의 그림에서 음악의 주제에 맞게 표현되는 무희의 몸놀림은 내가 가장 즐겨 그리는 오브제다. 춤을 추듯 표현되는 무희의 모습은 곧 음악이 흐르고 있음을 암시한다. 나의 그림은 눈으로 보는 연주회다. 어떤 음악이든 시각적으로 표현이 가능하다. 그림의 배경을 받쳐주는 흐름이 있는 곡선 들과 가끔씩 떠 다니는 음표들은 시각적으로 나의 그림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도 있지만, 디자인적인 요소로 공간을 장식한다. 이들은 회화적이고 디자인적인 요소를 동시에 표현한다. 평면적인 표현의 부분이 있는가 하면 입체적인 묘사도 있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의 틀에 모으려고 무척 고심한다. 나의 작업에서 가장 표현하기 힘든 부분이 이 점이다. 나는 매일 요가와 명상으로 나의 집중력을 키워 나간다. 한가지 제목의 음악을 수개월 동안 반복하여 듣는 인내와 깊은 고찰은 나의 훈련된 정신덕택에 가능하다. 나는 예리하게 표현된 여백의 선에 매력을 느낀다. 그것은 인간의 한 가닥 생명의 선이며 숨을 쉬는 곳이다..
2011, 1월 6 일 작가 문혜자
Music for Enchanted Landscape Escape(0915)
음악 속에서 느껴지는 자연의 묘사가 실제적인 것이 아닌 환상의 자연인 관계로 나는 이 느낌을 명상적인 물체로 표현 하기 위하여 모든 이미지는 두둥실 떠 다닌다. 시들은 장미꽃과 흩어져 떨어져 놓여 있는 꽃잎들, 무지개 아래 누워 있는 여인, 아무런 느낌이 없는 손, 공허한 방에 귀신의 흔적, 혼자 울리는 전화벨 소리, 양떼들이 편안하게 잠자는 듯한 표현, 오래되고 부서진 주인 없는 휠체어, 바다 위에 떠 있는 그림자 없는 태양 등 은 실제의 자연에서 탈출하여 상상 속에 존재하는 상황을 표현 한 것이다. 양떼들이 잠자는 편안한 모습은 명상의 한 장면 이다. 화면의 이슈들을 힘찬 표현의 생명의 상징인 물고기의 드로잉이 하나로 묶고 있다. 테두리의 완만한 곡선은 오선지를 나타내며, 떠 다니는 악보는 장식적 기능과 음악의 시각적 전달의 수단으로 차용 되었다. 나는 3의 원칙을 존중하여 하나의 이슈를 서로 다른 세 방향에 각각 위치시켰다.
Music for Dream’s end Come True(1001)
음악 속에서 느껴지는 꿈을 이루어 나가는 상황을 표현 했다. 하늘에 무지개가 떠 있고 꽃이 만개한 꽃밭 사이로 사람들이 힘차게 걸어간다. 꿈을 이루기 위한 힘찬 행진 이다. 중심 부분의 직사각형의 형태 속에 깊은 계곡 위로 파스텔 톤의 색채의 별들이 총총 떠 있다. 꿈이 현실로 다가 오는 느낌이다. 나의 정신에도 꽃이 활짝 피었다. 전체적인 화면에 가늘게 그려진 곡선이 화면을 하나로 묶는다. 주변에 떠 있는 음표는 음악의 시각적 전달이며 장식적인 디자인 효과도 동시에 가진다. 전체적인 색상도 부드럽고 마치 봄날처럼 화사하다.
Music for Mass Murder Refrain(1001)
나는 음악 속에서 느껴지는 느낌을 갈구하는 손 놀림과 무희의 춤 사위를 통해 죽음과 희망의 순간을 기도하는 구도자의 마음으로 표현했다. 배경의 흰 꽃들은 민들레 꽃이며 슬픔을 상기 시킨다. 비밀을 간직 한 듯 한 주사위가 허공에 놓여져 있다. 동양란의 꽃이 주위에 흩날리고 있다. 연 분홍색채의 동양란은 생명력이 강하고 가냘픈 느낌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정의로운 죽음에 대한 환상이다. 대량살상에 대한 후회의 느낌으로 음악의 느낌과 일치 한다. 배경이 되는 선이 무거운 분위기를 강조한다. 어두운 배경에 수많은 점 들이 장식적으로 표현되어 화면의 단조로움을 깨뜨리고 있다. 이 작품은 말이 없는 기도 와 행동이 없는 죽임에 대한 후회의 아름다운 표현을 음악에서보다 더 실제적인 환상으로 표현 하였다.
Music for Hymn to The immortal
음악 속에서 들려오는 끊임 없이 부는 바람소리는 나의 작품에서 행복한 만남을 기약 하고 하늘나라로 날아가는 어린 소녀와 소년을 어딘가로 인도하고 있다. 화면 가득히 스산하게 흩어져 바람을 연상케 하는 나뭇잎들이 화면 전체를 하나로 묶고 있다.. 아름다운 만남을 환영하듯 꽃 밭 가운데 무희가 기쁨의 춤을 추고 있다. 화면 중앙에 희망을 상징하듯 태양이 솟아 오른다. 3과 7의 원칙을 존중하여 세 사람의 무희와 7송이의 커다란 장미꽃이 화면에 고르게 배치되어 있다. 주변의 곡선에 장식된 음표는 장식적이며 음악의 시각적 소통을 쉽게 전달한다. 한국 전통의 무속인의 춤사위처럼 표현된 추상적인 구성이 강렬한 느낌의 태양을 차용하여 작품의 중심 주제로 표현 하였다.
문혜자 작품의 특징 또는 주의 주장
현대 회화에서 화가는 각자의 독특한 기법을 개발 해야 한다. 나는 그 기법으로 그림의 제작과정을 모두 보여 주면서 작가도 즐겁고 관람자의 눈도 즐거운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음악이 들려주는 느낌보다 더 환상적인 느낌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나는 음악을 회화로 표현하는데 있어서 붓을 마치 지휘자의 지휘봉처럼 다루었다. 세필(0번)로 드로잉 하듯 가볍고 즉흥적인 기법으로 100호 200호 500호 등 대작을 거침없이 그리고 싶었다.
화면에 빛의 색을 먼저 칠하고 강렬하고 눈에 잘 띄는 자주색을 사용하여 아주 빠른 속도로 감각에 의존한 드로잉을 한다. 이것은 예술가 만이 가지는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확신이며, 숙련된 드로잉에 의한 솜씨며, 불확실함에 대한 신뢰이다. 보색의 대비를 이용하여 색상을 조화롭게 배치 한다. 마치 음악에서 음을 조화 시키는 것과 같다.
나는 작품을 제작 하는 중에 거의 수정을 하지 않는다. 가늘고 예리한 여백들을 남겨 두어 마치 캔버스가 숨을 쉬듯 표현하기 위하여 무척 긴장하고 정신을 집중한다. 그 여백들을 통해 나의 캔버스는 숨을 쉰다.
3과 7의 원칙을 존중하여 작품 속의 이미지를 세 가지 또는 7가지로 항상 존중한다. 3과7 이라는숫자가 지구에서 한국의 위치인 북위 37도에 있는 것과 일치함을 신기하게 느낄 때가 있다. 한국의 묘사가 꼭 한국적인 것은 아니라고 본다. 나의 그림은 한국 전통 무속인의 춤사위에서 나왔다. 나의 그림의 색상은 화면 속에서 항상 그 조화를 잃지 않는다. 내 그림의 색상은 마치 5월의 한국의 색상을 연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