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혜자작가의 그림이 품고 있는 에너지와 구조
예술평론 존 오스틴
문혜자의 기하학적인 유화 작품들은 그 자체로 활력이 넘치는 자신감과 권위를 드러낸다. 문혜자의 작품의 중심에는 물질적 현실에 기반하지만 아주 예민하게 비물질 사이의 교감에 대한 요구도 인지하는 그런 경험과 각 작품들에 공존하는 선험적 현실에 대한 일례들을 관람자들에게 제공하려는 그녀의 명백한 충동이 있다. 다시 말해, 그녀의 작품은 성격상 혼성이고, 이것은 그녀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환상적 구성을 통해 볼 때, 현대시각문화가 강조하고 칭송하는 불순함이나 예측불능과 일맥상통한다. 조셉 알버스가 세우고 이후, 하드 엣지 추상화가들과 옵아티스트들이 발전시킨 색 반응을 구성하는 전통을 그녀가 배운 바 대로 이어가면서도 이들 가운데 제이콥의 작품에 나타나는 주된 특질인 동시적 분산이 요컨대 그녀의 작품마다 스며 나오는 마법 같은 전능함의 성직자와 같은 경건한 작품이 되는 원천이라 하겠다.
그녀의 작품이 집에까지 몰고 오는 미학적 순수함의 경험은 초월의 요구와는 별개로 아주 다양하고 복잡한 정신적 만족에서 나온다. 이러한 만족감은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관계나 근원에 대한 요구, 정체성, 방향성, 헌신의 대상, 그리고 유용성에 대한 욕구” 등을 포함한다. 이들은 각각 문혜자작가의 작업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어서, 모서리의 질적 상태와 양감과 색감 사이를 연관 짓는 경험을 관람자에게 선사한다. 게다가 작가는 특히 인공물과 자연물, 그리고 그 둘의 조합을 가지고 만들어내는 그녀의 작품 속에 이러한 시각적 코드를 조화롭게 그리고 섬세하게 심어놓는다. 고대 철학자 아폴로니우스가 우리의 “모방 능력”이라고 한 것 즉, 우리의 머리 속에 저장되어있는 사물이나 이미지들을 추상적 모양들과 패턴들로 인식하기 위해서 우리가 그 투사능력을 사용하는 방법 등이 바로 이런 작업에서 재미있는 점이다.
문혜자작가는 그녀의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이런 류의 분류를 하려는 지각 행동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대가임에 분명하다. 작가가 창안한 형태들, 질감들과 색들은 관람자들이 연상력을 이용하는 동안이면 충분히 여러 가지 생각들을 신속히 이끌어내도록 하는 회화적 방법이다. 그러므로, 만들기와 연결하기, 의견과 예상 사이의 복잡한 상호 반응의 과정은 작가 작품의 구성과 제목을 마주하는 관람자의 눈과 정신에 매번 발생한다.
대담함, 운기 가득함, 그리고 구조화된 천상의 아름다움은 문혜자 작가의 작업이 가지고 있는 보증된 각인이다. 여기에, 불확실성에 젖어 든 감각이 띄워놓은 듯 한 각각의 그림에는 체계적인 층들이 켜켜이 검사하고 총괄되고 묶여진 채 의도적으로 색과 그림이 분배되어있다는 점을 우리는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 그림들은 다음의 두 가지 조건 사이에서 계류 중인 듯한 상태로 우리의 흥미를 자극한다: 관람자가 경계 없는 무한으로의 색의 확장을 사용함으로써 초월적인 면을 떠올리도록 용인했음에도 정작 작품은 선험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있다. 그러므로, 기하학적 추상에서 이런 켜켜이 얹어진 색의 현시는 그 자체로 인내하는 현재와 변화와 변화하지 않음, 시간과 무시간 사이의 대비를 떠올리게 한다.
문혜자작가의 작품이 주는 분명한 즐거움의 한 단면은 실제냐 아니냐를 놓고 우리의 감각을 혼란스럽게 한다든지 공간적 유희를 빼어나게 완성한다든지 이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유희이다. 그녀의 탁월한 디자인 감각 그리고 질감과 비율을 다루는 재능과 마찬가지로, 작가의 신중한 패턴과 색들의 연구는 이런 놀라운 작업에서 예민하게 감지된다. 작가는 그만의 형태로 계산된 예측불가를 통해 세상을 표현한다. 그러면 이어서 상상력을 촉발시키고 정신을 매료시키며 관람자의 정신을 같은 정도로 녹여 넣을 그런 이상적인 도식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존 오스틴은 맨하탄에서 거주하며 일하고 있는 예술평론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