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06.11 작가 문혜자 )
주말엔 무언가 다른 일을 해서 그림 그리기 에서 떠나보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나의 계획은 항상 어긋나고 만다.
커피숍에 앉아서 주변을 둘러 볼 때에도 심지어 자연의 경치를 즐기고 있을 때 조차도 나는 어느 새 화가로 돌아가 있다.
매 주 토요일 늘 같은 장소에서 바라보는 가로수 한 그루가 있다. 그것은 무척 병약하여 굵은 가지의 껍질에는 많은 표피가 벗겨져있지만, 조형적으로 가치가 있기에 나는 그것에 관심을 두고 스케치 하곤 한다. 나뭇잎이 아주 넓은 잎들은 표피가 얇고 햇빛이 비치면 그림자 부분도 약간은 투명해 보인다.
그렇게 지난 주까지도 건강하게 보였던 잎들이 겨우 일주일 지났는데 시들고 병약하여 썩은 부분이 많아졌다. 나는 썩고 말라 변색된 나뭇잎 들의 색상에 매료 되었다. 여러 가지 색들로 혼색 되어 만들어져 나온 짙은 갈색계통의 붉은 기운을 띤 검붉은 피 빛깔은 마치 썩은 생선에서 보았던 그 색상 이었다. 그곳은 빛이 전혀 통과 하지 않은 죽음의 장소를 상기시켰다. 살아있는 잎의 그림자 에서는 볼 수 없는 불투명한 죽은 색이다.
그리고 나는 무엇인가 발견 한 듯 상기 되었다.
지금 그리고 있는 200호의 주제가 그 나뭇잎의 묘사로 표현되어있다. 나는 빛의 색 위에 죽음의 색상과 비슷한 보라색을 두텁게 칠하고 그 위를 아주 예리한 조각도로 긁어내 수많은 나뭇잎의 흔들림을 하나하나 다르게 표현하였다. 많은 시간을 공들여 그린 그 부분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고심하여왔다. 긁어낸 부분은 마치 엷은 나뭇잎의 살아있는 그림자 부분과 흡사하지 않은가?
내가 사용하는 보라색은 튜브 하나에 75,000원이어서 여간 부담스럽지 않지만, 그 색상은 내가 검정색 대신으로 사용하여 색의 채도를 낮추는데 애용한다. 그 동안 그 색을 오직 바탕색 내지는 혼색에 사용하여왔지만, 오늘 나는 즐거운 발견과 나름대로의 지식을 터득하였다. 지난 일주일 간, 나는 그 나뭇잎 스크래치작업을 하기 위해 두통약까지 복용하며 나의 정신과 투쟁하였다. 나의 행위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나는 바람의 흔들림을 억새가 미쳐 피기 전의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을 즐겨 그린다. 그리고 억새의 부드러움을 스크래치 기법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하였다. 나만의 즐거운 표현 방법이었다. 이제 두 번째로 스크래치 기법의 적용을 터득한 셈이다. 즐거운 하루다. 그림에서 떠나는 하루가 아니라 그림과 더 밀착되는 주말이다.
2011, 6, 11 화가 문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