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에의 유추, 그 비선형 공간의 궤적 : 문혜자 근작전, [재즈 환타지]
재즈와 시각 예술이 만날 수 있다면 어떠한 모습을 띠게 될까?
이러한 의문은 아마 막연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선 언급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조각, 회화, 드로잉 같은 전형적인 시각 예술과 음악의 만남을 고려할 경우, 특히
음악을 받아들이는 미술가의 입장에서는, 재즈보다는 유럽 풍의 클래식 음악과의 조우를
기대하는 것이 훨씬 더 적절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점은 서구의 모더니즘 미술과 음악의 오랜 동반자적 역사에서 보아 당연하리라 믿어진
다. 가령 들로네, 뒤피,마티스에서 칸딘스키에 이르는 초기 전통을 통해서 경험했던 것처
럼 미술이 음악으로부터 형태의 선율과 색채의 순수성을 유추해 낼 수 있는 충분한 소지
가 있다는 데 대한 믿음이 그 하나의 예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건축 못지 않게 음악 또한 현대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큰 몫을 하였지만
재즈 같은 특정한 민족 음악으로부터 영감을 받아들인 예는 지금까지 많지 않았고 성공적
인 예를 찾기 또한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이 점에서 보자면 문혜자가 근자에 시도해 오고 있는 [재즈 환타지]는 유별난 것으로
이해된다. 그의 경우는 이를테면 클래식보다는 다양한 합성음을 도입하는 백남준의 비디
오 아트의 경우에 가깝다고 할 수 있으나 재즈 하나에만 심취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역시
유별난 것이다.
문혜자에 있어서는 그가 재즈와 맺은 평범치 않은 인연이 아니고서는 재즈와 미술의 만
남, 나아가서는 재즈에서 미술의 영감을 얻고자 했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일지 모른
다. 그래서 그에게서 `평범치 않은' 인연이란 앞서 초기 모던 운동사에 있었던 미술의 `순
수화'의 원천을 찾으려 했던 선례와 궤를 달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에게 있어서는 재즈
에 대한 각별한 사(私)적인 원천이 동기로 작용하였음을 간과해서는 안되리라는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작가의 언급에 주목해 보자.
나는 수십년 간 클래식 음악에 심취해 왔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특히 좋아했고
쉔베르크의 '정화된 밤' 등 현대적인 음악에도 심취하여 왔다. 그러나 1996년 여름, 뉴욕
에서 마리아 슈나이더(Maria Schneider)의 재즈 콘서트를 감상하고 난 후 나의 취향은 돌
변하였다. 신선하면서도 새로운 충격에 의해 나의 상상력은 진일보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이 무렵 딸아이가 재즈 작곡을 하면서 실수로 여러번 고쳐 연주하는 기이한 음악이 듣기
싫지 않은, 새로운 느낌은 물론, 특히 그것들이 갖는 불협화음에서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감정이 일면서 새로운 미술에 대한 충동을 재촉하였다.
문혜자가 어언 재즈와 맺어 온 5년사의 연륜은 작가 자신의 언급에서 보자면 [실수로 여
러번 고쳐서 연주하는 기이한 불협화음]이 주는 감동을 시각 예술에서 유추해 보려는 데
있엇던 것이 확인된다. 좀더 자세히 언급하자면 `완벽하지도 않은', 이를테면 `흐트러진
상태'라든가' 준비도 없이 악보도 보지 않고 즉흥적으로 연주 하는, 예측 불능한 음율들'을
회화와 조각, 그리고 무엇보다 드로잉으로 옮기려는 데 심혈을 쏟아 왔다는 말이다.
[재즈에의 유추]가 이렇게 해서 98년, 9번 째의 개인전에서 시작되었지만 이번 제 10회
전은 이전보다 훨씬 심화시킨 작품들을 보여 준다.
그의 주 전공인 조각을 비롯해서 드로잉과 회화 등 세 분야 모두가 재즈적 분위기를 만끽
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하나의 명제인 [재즈 환타지]로 명명되고 있다.
흔히는 이 명제에다 부제를 붙여 테마의 내용을 제한하는 경우를 볼 수 있으나 이 또한 기
본 명제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조각의 경우는 재즈 베이스· 전자 기타· 기타리스트· 트럼펫의 나무· 대형 밴드
가, 회화의 경우에는 마이애미의 하늘· 고리· 빨간 트럼펫· 하늘의 사다리· 계단이, 오일파
스텔의 경우는 밤· 일몰· 꽃· 고통· 영혼· 베이스 연주자 등이 각각 부가되고 있다. 게다가
이들 부가 명제마져 대부분이 재즈 악기들이거나, 연주자와 연주형식의 이름들로 열거되
고 있어 가히 그의 근작들은 재즈의 세계로 충만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문혜자의 근작들은 재즈가 갖는 흐트러지고 자연스런 불협화음 내지는 분방하
고도 예측하기 어려운 음향들의 분위기를, 이에 버금가는 이를테면 자유롭고 분방한 붓
놀림 같은 상황을 보여 주려는 데 뜻이 있다.
조각의 경우 재료가 브론즈이면서 이와 걸맞지 않게 괴체와 선조의 자유로운 만남을 시도
한다든지 율동을 분방하게 분출해 내거나 서로 상충되는 형상들의 중첩과 의도적인 궤리,
인체의 율동을 시사하면서도 컬러링에 의한 저돌적인 충동을 담은 선율과 형상들, 충격적
인 선(線)매스들의 집합과 소용돌이 등, 다양한 구조물이 주목을 끈다.
이와 똑같은 상황이 회화와 드로잉에서 2차원으로 전개된다.
서로 부조화스러운 컬러와 형상들이 대치·대비·전복을 일으키면서 응집되는 가운데 큐빅
한 기하도형이나 리본(Ribbon)매스들의 윤무, 트럼펫을 비롯한 재즈 악기들이 극적으로
춤추며 뿜어내는 연무, 고리들과 선들이 엇갈리면서 상식을 넘어선 교접이 이루어지는 일
대 카오스의 세계가 연출된다.
드로잉의 경우는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흑연, 젯소, 오일 파스텔 등의 색
료를 사용한 섬세한 고리들의 이음새가 그려지고 이와 대조적으로 대범한 고리들과 페이
퍼 롤(Roll)의 자태, 어디선가 흘러온 물결파가 갖는 줄음질의 윤무, 금방 터질 듯 열리는
미스테리의 꽃과 원환체들의 이음줄, 수직 형태들이 반복적으로 얽히고 섬세한 음영을 동
반한 리본들과 구름들, 갑자기 화려한 색조를 띠고 만개되는 꽃은 물론, 일몰의 장면과 저
녁 노을 속의 요정들, 뿐만 아니라 밀려오는 고통과 고독한 영혼들이 즉석에서 거론되고
불시에 등장한다.
이것들을 작가는, 스스로 고백하고 있듯이, [어둠 속에서 맬랑꼴리하게 들리는 테너 섹스
폰, 힘찬 고음의 트럼펫, 강하고 혹은 여리게 두들겨대는 드럼을 연상하면서 파랑, 자주,
노랑을 대비시키는 한편, 재즈의 울림이 마치 종이가 휘말리듯, 천이 날리듯, 불꽃이 솟구
치듯, 마치 섹스폰이나 트럼펫이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질 때의 장면처럼] 그려내고 있다.
나에 관한 한, 이러한 조형적 충동의 분출은, 특히 시각 예술의 경우, [비(非)선형 공간
(non-linear space)>의 전형을 이루는 것으로 생각된다. 재즈의 선율 자체가 기본 선율
속에 이것과 닮았거나 상충되는 수다한 작은 선율들을 내재시키면서 다층적인 음조직체
를 만들어 내듯이 그의 작품들 또한 이와 유사하게 서로 고리에 고리를 이은 프랙탈 형상
들의 비선형 얼개를 만들 뿐만 아니라 그 배면 또는 전면에 이와 상충되는 형태 내지는 요
소들을 포지하는 등 현란한 동세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들 형상들은 집합의 방식에 있어서 즉발적일 뿐만 아니라 어디가 중심이고 또 어디가
주변인지 알 수 없는, 요컨대 중심과 주변이 서로를 밀쳐내고 각축하는 신선한 역동의 장
(場)을 연출하는 가운데 이른 바 [비선형공간의 궤적]을 만들어 낸다. 이 점에서 그는 오
늘 날 비등하고 있는 비선형계의 진상을, 이와 같이 재즈의 극적 상황 속에서 읽어 내고
있음이 틀림없다.
어느덧 문혜자는 자신이 80~90년대에 천착시켰던 것처럼 모던한 클래식 음악과 교감을
나누면서 정돈되고 선형적인 구조를 모색하던 조각에서 떠나 격동하는 시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비선형 공간을 재즈에서 발굴해 내고 있다. 자유로운, 또하나의 창조를 위해
가장 알맞는 장르로 을 강조하면서 입체보다 평면 쪽으로 경도하고 있는 것 또
한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최근 이러한 일대 변신은 그의 작업 연륜과 그가 속한 세대의 위치로 보아 파격적이며 신
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진다. 완전성을 조형 개념의 척도로 삼고 있는 우리 미술계의 현
실을 과감히 뒤로 한 채 거치르고 미완의 야성을 전면에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 또한 새롭
고 신선하게 다가 온다.
새 시대의 새로운 미술을 위한 자신의 총체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이번 개인전이 그를 아
끼는 애호가들에게서 진실로 이해와 사랑으로 갚음되기를 기대하고자 한다.
2000, 3 김 복 영(홍익대 교수·미술평론가)